디지털 돌풍은 아직? CM보험 시장, 대형사의 벽에 가로막힌 신생 보험사들
온라인을 통한 보험 가입이 점점 일상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손해보험 시장의 구조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임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CM(Channel Marketing) 채널, 즉 소비자가 직접 보험 상품을 비교해 온라인으로 가입하는 방식의 시장에서도 기존 대형 보험사들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는 반면, 디지털 기반 신생 보험사들은 여전히 ‘미미한 존재감’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손해보험사의 CM채널 수입보험료는 약 7조8777억 원으로, 전년보다 4.5% 증가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는 보험 소비 행태가 점차 비대면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특히 모바일 기기 보급률과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지금, 보험에 대한 정보 탐색과 비교가 쉬워지면서 소비자들은 점차 설계사나 텔레마케팅(TM) 중심의 전통적인 판매 채널보다 온라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성장 수치 너머에 뚜렷한 양극화 구조가 보인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 이른바 '빅4' 손보사가 CM채널 수입보험료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삼성화재는 3조원이 넘는 실적을 기록하며 1위 자리를 확고히 했다.
반면, 이 시장에 ‘혁신’을 내세우며 등장한 디지털 전용 손해보험사들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디지털 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의 CM채널 수입보험료는 1,458억 원으로, 시장 점유율은 2%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나손해보험, 카카오페이손해보험, 신한EZ손해보험 등도 각각 수백억 원대에 머무르며 대형사의 수치를 넘보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격차의 원인은 뚜렷하다. 우선 소비자 인지도와 브랜드 신뢰도에서 전통 손보사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특히 ‘자동차 보험’처럼 민감도가 높은 상품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계약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의 접근성은 좋지만, 실제 가입까지 이끄는 UI/UX나 보장 내용에 대한 직관적 설명 등에서는 아직도 대형사와의 간극이 존재한다.
디지털 손보사들은 ‘가입 편의성’과 ‘데이터 기반 맞춤형 상품’을 무기로 시장을 파고들고자 했지만, 보험 특유의 복잡성과 신뢰 기반 구조는 쉽게 허물 수 있는 장벽이 아니었다. 특히 캐롯손보의 주행거리 연동 자동차 보험과 같은 신선한 시도는 있었지만, 고객 충성도 확보나 지속적인 반복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가 정착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보험사들이 단순히 온라인 채널을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대형사와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 전략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CM채널이 주력인 만큼, UX·UI 고도화, 데이터 기반 리스크 분석 능력 강화 등 기술적 투자도 병행돼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보험 시장은 여전히 성장 여지가 큰 블루오션이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여전히 익숙한 이름들이 자리 잡고 있다. CM채널의 성장은 곧 소비자 주도의 보험 시장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이 고착화된 구도를 깨뜨릴 수 있는 디지털 보험사의 ‘2막’이 열릴 때 시작될 것이다.
디지털의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단순한 기술력 이상의 신뢰, 편의성, 서비스 경험까지 아우르는 종합 전략이 요구된다. 이제는 단순한 진입이 아닌, 진짜 경쟁을 위한 무기를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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