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화폐 혁신의 전초기지, 홍콩이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한 이유

 한때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선도주자였던 홍콩이 최근 스테이블코인 규제 프레임워크로 방향을 틀며 글로벌 디지털 금융 구도의 한복판에 섰다. 이 같은 전환은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닌, 디지털 자산 생태계 전체의 동력 구조를 바꾸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이 변화는 규제, 산업, 사용자 간의 균형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홍콩식 해법을 담고 있다.



홍콩은 2024년 5월, 정식 입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자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했다. 시행일은 오는 8월 1일. 단 3개월 만에 제도를 실전 적용하는 이 초고속 행보는 전 세계 주요 금융 도시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이례적인 속도 이면에는 미리 준비된 규제 샌드박스 실험과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가 있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진 HKMA의 샌드박스 프로그램은 발행자들이 기술적, 법적, 사업적 관점에서 규제 기대치를 체득하게 했고, 이는 실질적인 정책 실행력으로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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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이 정책 변화에 반응하는 시장의 풍경이다. 핀테크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스탠다드차타드, 알리페이 운영사 앤트그룹처럼 탄탄한 인프라를 보유한 대형 금융사까지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이 스테이블코인을 매개로 통합되는 흐름의 일부로 해석된다. 특히 발행자 수를 제한하겠다는 당국의 입장 속에 ‘선점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스테이블코인은 그간 가상자산 시장 안에서만 존재해왔다. 변동성이 크지 않고, 실제 법정화폐와 1:1로 연동된다는 안정성 덕분에 디지털 결제 수단으로서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는 있었지만, 명확한 규제 틀 없이 불투명한 상태로 운영돼온 것도 사실이다. 홍콩은 이 모호함을 정리하면서도 디지털 금융 생태계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예를 들어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준비금 전액 보유는 물론, 재무 건전성 기준과 데이터 보안 요건까지 충족해야 한다. 반면 지나치게 보수적인 규제가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일정한 샌드박스적 성격도 함께 유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홍콩이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병행 전략’을 명확히 하며 공공과 민간 디지털 화폐의 역할을 나눴다는 점이다. e-HKD는 주로 공공 서비스나 국가간 결제 등 거시경제적 측면에 방점이 찍힌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결제 생태계의 실질적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 이 둘의 공존은 규제당국의 적극적인 정책 설계 없이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결국 홍콩은 금융 허브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디지털 화폐 시대에 걸맞은 유연하고 전략적인 정책을 통해 다시금 금융 혁신의 중심에 서려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중심지라는 지위를 이어가기 위해선 기술적 혁신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규제 체계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안에 정착시키려는 홍콩의 실험은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그 파급력은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디지털 화폐 시장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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