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자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 교통 약자를 위한 ‘금융 포용’의 첫걸음

 그동안 빚을 진 사람들에게 ‘이동의 자유’는 종종 사치로 여겨졌다. 신용이 낮다는 이유로 버스 한 번, 지하철 한 번 타기도 어려운 현실. 후불 교통카드 하나 없이 매일 동전을 세어가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일터로 향하고, 병원에 가고, 아이를 등원시키며 오늘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제 정부가 이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다.



최근 금융당국은 채무 조정 대상자와 같은 저신용자에게도 후불 교통카드 기능이 포함된 체크카드를 발급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신용카드는 물론 기본적인 후불 교통카드조차 사용할 수 없던 이들에게는 오랜만에 반가운 변화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적 약자 보호’ 기조와도 맞닿아 있는 이 정책은, 단순한 결제 수단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인 생활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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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연체 이력이 있는 사람들은 금융 거래의 거의 모든 문이 닫힌 채 살아왔다. 계좌 개설도 어렵고, 카드 발급은 더더욱 힘들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소비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자체가 무너진다. 버스를 탈 돈이 없어서 면접에 늦고, 아이 등하굣길을 챙기지 못하고, 병원을 제때 가지 못해 병을 키우기도 한다. 이렇듯 이동권이 제한되면 경제적 자립도, 건강도, 인간다운 삶도 줄줄이 무너진다.


정부가 검토 중인 방안은 소액 후불 기능을 포함한 체크카드다. 예컨대 월 30만 원 이하의 한도로 후불 교통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이후 상환 실적에 따라 점진적으로 한도를 넓히는 방식이다. 이는 제도적으로도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고, 사용자에게도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단순한 ‘혜택’이 아닌, 회복의 사다리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없진 않다. 신용 회복 전까지는 모든 금융거래를 막아야 한다는 기조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배려다. 이미 채무 조정을 통해 상환 의지를 보인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금융 회복을 앞당기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 후불 교통카드 정도의 소액 신용이 새로운 금융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은 낮고, 오히려 일자리를 찾고 병원을 다니는 등 실질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므로 더 건강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카드 업계도 이와 같은 변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익적 차원에서 협조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만큼, 실무적 논의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채무 조정 대상자 중에서도 계좌 보유자에게 우선 적용하고, 이후 점차 확대하는 방식은 현실적이면서도 포용적인 접근이다.


이번 조치는 단지 ‘교통카드’ 하나를 열어주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담겨 있다. 금융은 숫자만을 다루는 영역이 아니다. 결국 사람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아무리 빚이 있어도, 삶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이동권은 보장돼야 한다. 그리고 그 작은 시작이 오늘 정부의 결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신용 불량자’라는 낙인보다,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이라는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봐야 할 때다. 후불 교통카드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사회는 그렇게 한 사람씩, 한 걸음씩 다시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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